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고인이 되신 정우동님 막내딸 입니다.
어떤말로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 한참 망설여 집니다.
먼저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 1월 24일 부친상에 바쁜 중에도 따듯한 조문과 부의를 베풀어 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무사히 장례를 치르고, 저희도 조금씩 평상심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아직 경황이 없어, 우선 글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병원에 계실 때부터 날마다 문병해 주시고 3일 내내 빈소를 지켜주시고 장지까지 동행해 주신 운영자님, 윤교생 지휘자님, 한은숙님, 성함은 잘 모르지만 여러 운영진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사이트에 처음 들어와 봅니다. 메인 화면에 보이는 밝게 웃는 아빠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옆에 있던 26개월의 저의 아들(아빠의 손자입니다)이 사진을 보며 "할지다~할지 이리 와. 빨리 와"하는데 정말 금방이라도 달려 오실것 같습니다.
손자가 "할지"말만해도 그리 좋아하셨는데...
어제는 큰언니 회사에서 인사발표가 있었습니다. 언니네 회사 최초로 여자 차장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다면 무척이나 좋아하셨을 텐데...
어찌 얼굴도 못보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기쁜 소식도 못듣고 그냥 가셨는지 너무 가슴이 아프고 후회만 밀려 옵니다.
이 사이트에 쓰여진 아빠에 대한 많은 분들의 말씀들을 읽어보며 전 참 우리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해는 커녕 관심조차 없었던 못난 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그저 쓸데없이 과하게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엄마가 응급실에 누워있어도 약속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던 아빠,
평생 모아 온 전 재산이 날아가 버릴 판에도 허허 웃기만 하던 아빠, 집에서는 참 대접받지 못하던 아빠였습니다.
언제부턴가 무슨일이던 안되면 모두 다 아빠 탓이었습니다. 식구들의 그런 짜증을 큰 소리 없이 다 받아주시던 아빠였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정말 죄송하고 후회가 되는 마음 뿐입니다.
매번 어디론가 바쁘게 다니는 아빠를 보녀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리 열심히 나가냐고 묻기만 하고 그 대답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들어와 보니 무엇이 아빠를 그토록 열심히 하게 만들었는지 알것 같습니다.
여기에 쓰여진 글들,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있는 동영상들을 처음 보면서 아빠의 즐겁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볼수 있었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도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 계신분들이 채워주신 듯합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생 책읽기를 즐기며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써 내려 갔던 아빠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하나의 글을 쓸때도 몇번이나 자료를 찾아가며 확인해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완성했던 글들이 이 사이트에 고스란히 남아있네요.
여러분들이 아빠를 추모하며 만들어 주신 헌정곡(김관식 님)과 헌정시(임경희 님)를 보며 감사의 마음과 반성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딸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은 분들이 해주심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언젠가 자신의 글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보는 것이 꿈이다 라던 아빠의 말이 기억이 납니다.
너무 늦은 것 같기는 하지만 늦게라도 그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아빠의 글이나 동영상 자료를 모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여 여기 계신 분들께 염치없는 부탁드립니다.
책을 엮는 방법이나 이 글들이 묻히지 않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신경 써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빠와는 달리 글쓰는 재주가 없어 두서 없이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여기 계시는 모든 불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2016년 1월 28일
정우동씨의 막내딸 정은주 올림
어떤말로 글을 시작해야 하는지 한참 망설여 집니다.
먼저 여기에 계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지난 1월 24일 부친상에 바쁜 중에도 따듯한 조문과 부의를 베풀어 주신 데 깊이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무사히 장례를 치르고, 저희도 조금씩 평상심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마땅히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는 것이 도리이오나 아직 경황이 없어, 우선 글로나마 감사의 인사를 드리니 너그러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병원에 계실 때부터 날마다 문병해 주시고 3일 내내 빈소를 지켜주시고 장지까지 동행해 주신 운영자님, 윤교생 지휘자님, 한은숙님, 성함은 잘 모르지만 여러 운영진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이 사이트에 처음 들어와 봅니다. 메인 화면에 보이는 밝게 웃는 아빠의 사진을 보니 마음이 먹먹해 집니다.
옆에 있던 26개월의 저의 아들(아빠의 손자입니다)이 사진을 보며 "할지다~할지 이리 와. 빨리 와"하는데 정말 금방이라도 달려 오실것 같습니다.
손자가 "할지"말만해도 그리 좋아하셨는데...
어제는 큰언니 회사에서 인사발표가 있었습니다. 언니네 회사 최초로 여자 차장이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었다면 무척이나 좋아하셨을 텐데...
어찌 얼굴도 못보고 한마디 말도 못하고 기쁜 소식도 못듣고 그냥 가셨는지 너무 가슴이 아프고 후회만 밀려 옵니다.
이 사이트에 쓰여진 아빠에 대한 많은 분들의 말씀들을 읽어보며 전 참 우리 아빠를 이해하지 못했던 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이해는 커녕 관심조차 없었던 못난 딸이었습니다. 집에서는 그저 쓸데없이 과하게 여기저기 찾아다니는 그런 아빠의 모습이 보기 싫었습니다.
엄마가 응급실에 누워있어도 약속이 있어 나가 봐야 한다던 아빠,
평생 모아 온 전 재산이 날아가 버릴 판에도 허허 웃기만 하던 아빠, 집에서는 참 대접받지 못하던 아빠였습니다.
언제부턴가 무슨일이던 안되면 모두 다 아빠 탓이었습니다. 식구들의 그런 짜증을 큰 소리 없이 다 받아주시던 아빠였습니다.
지금 와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정말 죄송하고 후회가 되는 마음 뿐입니다.
매번 어디론가 바쁘게 다니는 아빠를 보녀 도대체 무엇때문에 그리 열심히 나가냐고 묻기만 하고 그 대답은 듣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기를 들어와 보니 무엇이 아빠를 그토록 열심히 하게 만들었는지 알것 같습니다.
여기에 쓰여진 글들, 인터넷 상에서 찾아볼 수있는 동영상들을 처음 보면서 아빠의 즐겁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볼수 있었고
많은 분들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집에서도 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여기 계신분들이 채워주신 듯합니다.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평생 책읽기를 즐기며 자신의 생각을 조심스레 써 내려 갔던 아빠 모습이 기억이 납니다.
하나의 글을 쓸때도 몇번이나 자료를 찾아가며 확인해보고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며 완성했던 글들이 이 사이트에 고스란히 남아있네요.
여러분들이 아빠를 추모하며 만들어 주신 헌정곡(김관식 님)과 헌정시(임경희 님)를 보며 감사의 마음과 반성의 마음이 공존합니다.
딸들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많은 분들이 해주심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언젠가 자신의 글들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어보는 것이 꿈이다 라던 아빠의 말이 기억이 납니다.
너무 늦은 것 같기는 하지만 늦게라도 그 소원을 들어드리고 싶습니다.
막연하게 아빠의 글이나 동영상 자료를 모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어찌해야 할지 막막하여 여기 계신 분들께 염치없는 부탁드립니다.
책을 엮는 방법이나 이 글들이 묻히지 않는 방법을 알려 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신경 써 주시고 함께 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빠와는 달리 글쓰는 재주가 없어 두서 없이 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읽어주심에 감사드리며 여기 계시는 모든 불들의 가정에 건강과 행복이 함께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드립니다.
2016년 1월 28일
정우동씨의 막내딸 정은주 올림